자동차 휠에 항공기의 프로펠러가 달린 엠블럼을 사용하는 네덜란드의 슈퍼카 제조업체인 스파이커(Spyker)의 엠블럼에는 'Nulla Tenaciinvia Est Via(제압할 수 없는 길은 없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이 문구는 과거에 사용하던 스파이커의 슬로건입니다.
1902년 휘발유 엔진을 이용한 세계최초의 네바퀴굴림(4WD) 승용차를 생산한 '스파이커(Spyker)'는 '제이콥'과 '헨드릭 얀 스파이커' 형제에 의해 네덜란드 힐베르숨에 설립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마차 제조기술을 배운 형제는 그 솜씨를 인정받게 되었고 입소문을 타고 결국 1898년 네덜란드 왕실의 마차를 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후 스파이커 형제는 파리-암스테르담 레이스를 보고 그것에 충격을 받아 벤츠엔진을 얹은 첫 레이싱용 자동차를 제작하였는데 이 모델은 당초 년간 500대를 양산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10대 만이 양산에 성공하여 대량생산의 실패라는 쓴잔을 맛보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본격적인 판매를 위해 1900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RAI 전시회에 차량을 선보인 스파이커 형제는 1902년 까지 침체기에 있다가 벨기에 출신의 엔지니어인 '조세프 라비올레테'를 영입하고 큰 변화를 맞게 됩니다. '조세프 라비올레테'를 영입한 첫해 세계최초의 6기통 엔진과 네바퀴굴림 방식을 도입한 스파이커의 자동차는 4륜최초 브레이크를 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획기적인 기술의 적용과 계속적인 사업의 확장으로 명차반열에 오르게 된 스파이커는 랠리참가를 위해 랠리카인 '스파이커 14/18 투레르'를 제작하여 1907년 베이징-파리간 자동차 랠리에 참가하였습니다. 이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면서 평판이 높아졌으나 이에따른 엄청난 비용을 감수해야만 했던 스파이커는 이 때문에 재정적인 부담이 커지게되었고, 악제가 겹쳐 스파이커는 동생인 헨드릭의 사망등으로 결국 경영난을 겪게 되었고, 1908년 4월 파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이콥 얀 스파이커에 의해 다시 일어선 회사는 회사명을 바꾸게 되었고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전투기와 함께 네덜란드 왕실에 승용차를 납품하는 등 다시 제기에 성공하는 듯 하였으나 판매가 급격히 떨어져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1925년 마이바흐 엔진을 얹은 고급차 C4를 마지막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스파이커의 공장내부 모습>
이후 자동차 업계에서 잊혀졌던 스파이커는 2000년 네덜란드의 '빅터 R 뮐러(Victor R. Muller)'에 의해 다시 설립되었는데 전에 사용하던 스파이커의 상표를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기술력 또한 전과같이 어떠한 업체에도 뒤지지 않는 모델을 생산하였습니다.
<빅터 R 뮐러(Victor R. Muller)>
2000년 버밍엄 모터쇼에서 스포츠카 ‘C8 스파이더’를 발표하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으며, 우수 엔지니어링 상을 받아 명성 또한 쌓을 수 있었습니다.
<스파이커 C8>
2006년 F1팀 미들랜드를 인수한 스파이커는 수제작으로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희귀성의 고가모델로 알려지게 되면서 유명인과 사업가들에게 판매되고 있으며, 비교적 큰 자동차 생산 매이커가 없는 네덜란드의 자동차 기술에 큰 기여를 함과 동시에 네덜란드 뿐 아니라 세계의 자동차 발전에 있어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제조사중 하나입니다.
<최근 신생레이싱팀인 F1 '미들랜드'팀을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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